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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여주 영릉(英陵 세종과 소헌왕후)에서 알아보는 조선왕릉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제는 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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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Heritage Service

한글날에는 어디를 가야한다? 바로 여주에 위치한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이곳은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왕릉 중에서 영릉(英陵, 세종과 소헌왕후)을 관리하는 곳이죠!

이곳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 가면 조선왕릉이 어쩧게 만들어 졌는지 잘 설명한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더 좋으니 한글날 꼭 들러보세요~

▷ 영릉(英陵) 이야기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영릉은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능침 배치는 『국조오례의』의 예를 따랐으나,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병풍석이 생략되자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은 난간석에 문자로 새겼다. 내부 방은 석실(돌방) 대신 회격(灰隔, 석회와 가는모래, 황토를 섞은 혼합 물질)으로 만들었고, 석상(혼유석)은 2개를 배치하였다.
원래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 세종(世宗) 이야기
세종(재세 : 1397년 음력 4월 10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 재위 : 1418년 음력 8월 11일 ~ 1450년 음력 2월 17일)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1397년(태조 6) 준수방 본궁에서 태어났다. 1408년(태종 8) 충녕군에 봉해졌고, 1412년(태종 12)에 충녕대군(忠寧大君)이 되었다. 1418년(태종 18) 큰형 양녕대군이 왕세자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두 달 뒤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즉위 후 이듬해 집현전을 설치하여 많은 학자들을 등용하였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일화는 지금도 여러 가지가 전해진다. 어느 날 세종이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집현전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내시로 하여금 누가 밤늦도록 집현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지 보고오라 명하였다. 이에 내시는 신숙주가 홀로 독서하고 있다 아뢰었다. 세종은 그 말을 듣고 친히 집현전에 나가 그 광경을 살폈으나, 신숙주는 세종이 온 것을 모르고 계속 독서에 열중하였다. 세종은 새벽이 되도록 밖에서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다 신숙주가 고단하여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고 추운 날씨에 독서에 열중한 신하에게 자신의 어의를 벗어 덮어주고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깨어난 신숙주가 자신의 등에 씌워진 어의를 보고서야 전날 밤 왕이 행차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감복하여 왕의 침전을 향해 절을 하였으며 더욱더 학문연구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세종은 재위기간 동안 혼천의(渾天儀)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였고, 쓰시마 섬을 정벌하였으며 4군 6진을 개척하여 조선의 국경을 확장하였다. 또 여러 활자를 제조하여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고, 국가의례를 정비하였다. 그리고 1446년(세종 28)에는 우리나라 고유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창제하는 등 정치·경제·문화·과학·군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후 1450년 영응대군 사저인 동별궁에서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 소헌왕후(昭憲王后) 이야기
소헌왕후 심씨(재세 : 1395년 음력 9월 28일 ~ 1446년 음력 3월 24일)는 본관이 청송인 청천부원군 심온과 삼한국대부인 안씨의 딸로 1395년(태조 4)에 태어났다. 1408년(태종 8) 당시 충녕군이었던 세종과 혼인하여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고, 1417년(태종 17) 삼한국대부인이 되었다가 1년 뒤에 세종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왕세자빈(경빈)에 되었다. 같은 해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공비(恭妃)가 되었고, 1432년(세종 14)에 왕비가 되었다.
소헌왕후는 세종 즉위 초 태종의 외척세력 견제로 인해 친정이 화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 심온과 작은아버지 심정이 죽었다. 이때 소헌왕후 본인도 폐위될 뻔하였으나 세종의 보호로 무사하였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8남(문종·세조·안평·임영·광평·금성·평원·영응대군) 2녀(정소·정의공주)를 낳았으며, 1446년(세종 28)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의 사저에서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은 매우 슬퍼하며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대군에게 부처님과 그 가족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책을 내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수양대군은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보』, 『법화경』 등에서 일부를 발췌하고 한글로 옮겨 『석보상절』을 편찬하였다. 이를 받아본 세종은 직접 『석보상절』의 내용을 한글 노랫말로 옮겨 악장체 『월인천강지곡』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사적 제195호인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는 경기도 여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 그리고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세종대왕께서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꾸며져 있다.


위치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10
조성 연도 : 1446년(세종 28), 1450년(문종 즉위), 1469년(예종 1)
왕릉 형식 : 합장릉
쉬는날 : 월요일
문의 및 안내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0318853123~4

세종대왕유적관리소 누리집 : http://sejong.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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