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mimosa vinyl. 입니다.

매서운 장마가 지나고 찌는듯한 더위가 시작되었네요.
작열하는 태양, 짙은 녹음, 시원한 캔맥주와 울창한 매미소리…
‘한여름’ 하면 이런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요.
제겐 또 한가지, 영화 ‘아비정전’ 속 장국영이 런닝 차림으로 맘보를 추는 장면입니다.
습하고 끈적한 초록의 화면 속에서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볍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주인공 ‘아비’ (장국영) 는 친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방황합니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가벼운 관계를 지속하고, 버림받기 전에 먼저 여자를 떠나죠.
그는 ‘수리진’ (장만옥) 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원하는 그녀를 떠나 ‘루루’ (유가령) 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의 공허함은 도무지 채워지지 않습니다.

루루와 헤어지고, 생모를 찾기 위해 필리핀으로 떠난 아비.
그러나 어렵게 만난 어머니는 그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슬픔과 허무함에 휩싸인 아비는 위조 여권을 구하려다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결국 기차를 타고 도주하던 아비는 총에 맞아 쓸쓸히 죽게 됩니다.



‘중경삼림’, ‘화양연화’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죠.
‘아비정전’은 위 두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 같은데요.
기승전결이 없고 모호하다는 평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했죠.


저도 영화를 보면서 아비의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유년 시절의 결핍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순 없으니까요.

대체 뭐가 그렇게 외로워서 저런 청승을 떠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사람들이 왕가위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죠.
발 없는 새 ‘아비’의 해소될 수 없는 불안은
실은 발 디딜 곳 없던 홍콩의 씁쓸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4월 16일 오후 3시, 당신은 나와 함께 했어. 당신 덕분에 난 그 1분을 기억할 거야.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나는 이 1분을 지울 수도 없어.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아비가 수리진에게 했던 말인데요.
껄렁한 작업 멘트지만, 장국영의 얼굴로 하니 개연성이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수리진은 저 짧은 1분을 평생 잊지 못하고 아비를 추억하죠.

1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과거로 남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홍콩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감독만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겐 오프닝 장면에서 행복하게 춤을 추는 장국영의 그 1분이,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네요.

불안하고 자유로운 청춘의 낭만을 극대화하는 라틴 재즈와 함께
무더운 여름 밤, 영화 ‘아비정전’ 어떠신가요.




[Days of Being Wild] Soundtrack (1990): Terry Chan
[아비정전], 1990, 왕가위, 장국영, 장만옥, 류자경, 유덕화, 양조위
NETFLIX / WATCHA / TVING / WAVVE / 시리즈온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비정전 #왕가위 #장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