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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마주서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민간인 학살과 은폐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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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구 뉴스

▣ 대구·경북, 은폐된 죽음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 다가왔고 한반도는 희망과 희열로 넘쳤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일본이 물러난 자리, 미군이 들어섰고, 신탁통치 논쟁이 벌어지면서 좌우대립은 격화된다. 증오에 가까운 좌우의 감정적 대립은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게 된다.
1949년 12월 무장 군인 70여 명이 마을에 들어와 불을 지르고 주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마을주민의 2/3을 희생시킨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
1950년 대구·경북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1800여 명이 군에 의해 경산 코발트광산 지하 갱도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산 코발트광산 사건’ 등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4.19 혁명 이후 가족을 잃은 전국의 피해자들이 유족회를 결성했지만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탄압받아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고,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아픈 기억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다.

▣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살아 돌아온 이규성씨. 그는 국민보도연맹원이었다. 좌익이, 우익이 뭔지도 몰랐던 이규성 씨는 주변의 강요에 의해 보도연맹원이 되어 경산 코발트 광산 수직굴에 세워졌다. 당시 군인들이 쏜 총탄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규성 씨.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
가창골 민간인 학살의 현장 목격자였던 서상일 씨. 공장의 말단 직원이었던 그는 경찰의 강압으로 시신처리를 담당했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을 하면, 같이 빨갱이 취급을 하겠다는 협박에 한평생 입을 다물고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진실을 고백하는 서상일 씨. 그가 목격한 민간인 학살은 어떤 것이었을까.

▣ 영화감독 구자환, 유족의 가슴에 맺힌 원통함을 풀어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해온 구자환 감독. 그가 대구·경북에서 벌어진, 은폐된 죽음과 마주선다.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이면을 본다. 국가로부터 자행되고 은폐된 죽음, 민간인 학살의 진실규명은 우리의 과제로 남아있다.

posted by EssegeloSuefs80